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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의 This is America] 유타 아치스국립공원, 88m 돌기둥이 무지개처럼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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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스 국립공원 북쪽 데빌스 가든 구역의 랜드스케이프 아치. 거인의 하체를 닮은 돌기둥이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서 있다.

아주 먼 옛날 콜로라도 고원은 바다였다. 그러나 바다 깊숙한 곳의 모래 바닥이 융기하고 해수가 마르면서 대지가 됐다. 억겁의 시간 동안 대지는 몸을 뒤틀며 쪼개졌고 균열 사이로는 빗물이 스며 흘렀다. 수만 번의 겨울과 여름은 물을 얼리고 녹이며 틈을 벌렸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사막의 바람은 땅을 조각했다. 이들은 넓적한 바윗덩어리로 나뉘었다가, 거대한 기둥으로 깎였다가, 비로소 둥그런 아치가 됐다. 온몸에 수만 년 시간을 아로새긴 채로.

아치스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은 미국 유타주 남동부 깊숙한 콜로라도 고원 위에 자리한다. 메사, 뷰트, 핀, 후두라는 이름을 지닌 온갖 형태의 사암이 가득한 이곳은 그야말로 붉은 바위 세상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아치스국립공원 주인공은 '아치(Arch)'다. 지름이 최소 1m 이상 되는 구멍이 있는 바위에만 공식적인 아치 자격이 주어지는데, 공원이 보유한 천연 아치는 무려 2000여 개에 이른다.

공원은 크게 코트하우스 타워, 윈도 구역, 델리케이트 아치, 데블스 가든, 파이어리 퍼니스 총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자동차로 중심 도로를 달리며 전체적인 경관만 훑어봐도 좋지만, 공원을 대표하는 아치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난이도의 트레일을 걸어야만 한다.

가장 먼저 '더 윈도우스'라는 이름의 아치로 향한다. 커다란 사암에 나란히 새겨진 구멍 두 개가 정말 이름처럼 창문을 닮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더 윈도우스는 마치 한 쌍의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트레일을 따라 대지의 눈동자에 올라 그곳에 담긴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 만물이 굳은 듯한 온갖 모양의 기암괴석, 만년설이 쌓인 라 살 산맥, 드넓은 하늘이 한가득 펼쳐진다. 자연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다지도 특별하고 아름답다.

공원 북쪽 데블스 가든 구역에는 공원에서 가장 긴 랜드스케이프 아치가 있다. 길이가 무려 88m에 이르는 돌기둥이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장관을 연출한다. 세상 모든 것은 탄생하고, 주어진 시간의 삶을 살고, 때가 되면 소멸한다. 수만 년을 사는 바위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1977년 이후 아치스국립공원에서는 아치 43개가 붕괴했고, 2008년에는 랜드스케이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월 아치가 생을 마감했다.

랜드스케이프 아치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얇게 늘어진 아치 모습이 이 사암의 생애주기도 끝자락에 다다랐음을 증명한다.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곳 바위들은 말한다. 하나가 소멸한다는 것은 새로운 하나가 살아갈 자리를 내어준다는 의미임을. 영겁의 시간을 버텨온 아치가 무너진 자리에는, 시대를 담은 아치가 어김없이 태어날 것이다. 아치스국립공원에 왔다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이 있다. 유타의 상징, 델리케이트 아치다. 울프 렌치에서 시작되는 트레일을 따라 거대한 바위산을 기어오른다. 양옆으로는 아찔한 절벽 길이 이어지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눈앞에 별안간 자연이 만든 거대한 원형극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거대한 고리 모양 바위, 델리케이트 아치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말문이 막힐 만큼 장엄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다. 이 높고 외진 곳에 홀로 서서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왔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델리케이트 아치 최고의 순간은 일몰에 완성된다. 커다란 아치 틈 사이로 유타의 대지와 하늘이 새빨갛게 불타오른다. 세상 그 어느 창도 이보다 감동적인 풍경을 담아낼 수는 없다.

델리케이트 아치에서 일몰을 만났으니 이제는 캐니언랜즈국립공원의 메사 아치에서 일출을 맞이할 차례다. 메사 아치는 캐니언랜즈국립공원을 이루는 3개 구역 중 하나인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에 위치한다. 메사 아치는 델리케이트 아치에 비하면 규모는 훨씬 작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숨겨져 있던 진가가 나타난다. 납작한 아치 틈 사이로 켜켜이 쌓인 협곡과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기둥의 향연이 펼쳐진다. 태초의 지구를 보는 듯 생경하고, 신들이 사는 세상의 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작은 두 팔로는 결코 안을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풍경이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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