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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 먹고싶GO] 식탁에서 찾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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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터키를 여행했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아피온이라는 작은 도시를 거쳐 이스파르타라는 도시까지 갔다. 아피온의 온천문화와 이스파르타의 장미축제를 취재하는 일 때문이었지만, 사실 관심은 언제나 그렇듯 먹는 데 있었다.

그럼 터키에서 뭘 먹었냐면, 아침으로 올리브와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요구르트, 삶은 계란, 딱딱한 바게트를 먹었다. 점심으로는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 딱딱한 빵,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올리브를 먹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터키 여행 내내 치즈와 올리브, 요구르트, 딱딱한 빵, 삶은 계란을 먹었다는 것이다. 아, 이 음식들이 맛없었다고 불평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토록 맛있는 올리브와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요구르트를 먹어본 적이 없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에 내려갔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건, 올리브가 무려 열 세 가지 종류나 있는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건 건너편 테이블에 놓인 열한 가지의 치즈,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아홉 종류의 요구르트와 과일 잼. 사흘 동안 그 호텔에 묵었는데, 사흘째 아침에서야 나는 비로소 그것들을 다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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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시 딜라이트도 빼놓을 수 없다. 아피온에서 들른 미림울루라는 가게는 무려 1860년부터 영업을 해오고 있는 곳. 가게 주인 알리는 '형제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에게 시식할 '로쿰(locum)'을 한 접시 가득 담아주었는데, 달콤한 치즈 로쿰을 집어먹자마자 지구에 이런 가게가 있다는 것이 정말 축복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하며 가장 짜증 나는 순간 중 하나가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마주하는 형식적인 자리에서 '형식적인'(모양만 갖춘 맛없는 요리) 코스 요리를 먹다보면 여행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날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터키에서 먹은 올리브와 치즈, 케밥, 로쿰은 터키의 살인적인 일정을 용서해줄 만큼 맛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올리브와 치즈가 잔뜩 올라간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미사일이 날아가고 동물들이 멸종하고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는 이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그래도 느긋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여행과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세계를 어떻게 견디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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