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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 먹고싶GO] 실력자는 계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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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에 출장을 다녀왔다. 몇몇 이름난 요리사와 동행했다. 파스타를 만드는 요리사도 있었고 스테이크를 굽는 요리사도 있었다. 맛기행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베트남 현지 기업의 급식 현장을 돌아보고 기존 메뉴를 개선하고 새 메뉴를 개발하는 등 급식과 관련한 여러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2박3일 동안 머물며 현지 조리사, 영양사들과 만나 음식과 요리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출장을 통해 급식은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파는 음식과는 그 조리법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한끼에 적게는 500인분, 많게는 3000인분을 만들어야 하다보니 그럴 것이다. 요리와 음식에 대한 접근방식조차 달랐다. 급식은 맛이 좋아야 하지만, 맛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단가를 맞추어야 하고, 배식 시간을 조절해야 하고, 메뉴의 양을 예측하고 조절해야 한다. 노동에 필요한 양의 칼로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급식의 중요한 임무다. 음식이 남아도 문제고 모자라면 사고인 것이 급식이다.

현장 견학을 마치고 셰프들과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현지 조리사가 파스타를 만드는 셰프에게 물었다. "같은 레시피를 가지고도 사업장마다 맛이 다 달라요. 이유가 뭘까요?" 그가 대답했다. "별다른 건 없어요. 저울만 있으면 돼죠." 스테이크를 굽는 셰프가 옆에서 거들었다. "실력자는 계량합니다." 일을 하면서 가장 경계하게 되는 말이 '알아서' '대충'이라는 말이다. "원고는 어떤 방향으로 쓰면 될까요?" 하고 물었을 때 "작가님께서 적당히 알아서 잘 써주세요"라는 대답을 들으면 조금 난감하다. 나는 그럴 재주가 없다. 나는 "휴식을 주제로 원고지 10장 분량의 에세이를 써주세요"라는 주문이 좋다. 그래야 내가 원고를 설계하고 문장을 진행시킬 수 있다. 고기를 구울 때도 알아서 구워달라는 말이 어렵다. 죄송하지만 저는 고기에 대한 당신의 취향이 미디엄인지 웰던인지 모른다고요.

일을 마치고 저녁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국물을 후루룩 한 모금 마시고 파스타 셰프가 말했다. "이 육수를 1인분 뽑으려면 양지머리 200g, 생강 1톨, 대파 2분의 1개, 물 1.5ℓ, 다시마 사방 5㎝ 2장, 통마늘 2쪽, 팔각 2알, 통후추 8알, 통계피 1조각이 필요하겠지." 그는 계량하고 있었다. 이는 요리를 하면서 쌓아올린 자기만의 데이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고 그 데이터가 바로 우리가 내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아서 해주세요' 당신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이해가 부족하고 실력이 없다는 것을 들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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