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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미식기행] 야호, 입춘이다!…봄기운 완연한 울진 겨울바다로 따끈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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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에 개장하는 등기산 스카이워크.

지난달 25일 서울의 낮 기온은 영하 12도, 같은 시간 울진의 낮 기온은 영하 2도였다. 혹한의 서울을 떠나 동쪽 바다로 향한 본래 목적은 먹방이었다. 대게를 필두로 문어와 장치 그리고 방어까지 위를 든든히 채울 마음으로 떠났다. 칼바람을 감수하겠다고 호기롭게 떠난 울진 앞바다, 웬걸 서울보다 더 따뜻한 날씨에 마음까지 활짝 열려버렸다. 울진 최북단 나곡부터 후포까지 겨울바다 드라이브를 즐기고 제철 별미도 맛본 1박2일 울진 여행을 소개한다. 겨울바다로 피한여행을 가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 맛있는 겨울바다로 가자

서울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은 점점 더 파래졌다. 티끌 하나 없이 쨍하게 푸르른 하늘, 몸서리치게 추운 계절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 맑은 하늘 때문이다. 연일 미세먼지에 고통 받았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여정은 울진의 112㎞ 해안선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훑는 것으로 정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나곡 바다낚시공원. 울진 북면 나곡리는 강원도 삼척시와 경계를 하는 동네다. 차로 20분 거리에 덕구온천이 있지만 작은 해안마을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부 죽변으로 간다. 그랬던 마을에 2013년부터 명소가 생겼다. 갯바위에 낚시잔교를 만들고 해안산책로를 조성한 바다낚시공원이 그것이다.

아치형으로 만든 다리를 건너 해상에 조성된 낚시잔교를 산책했다. 이날은 유난히 파도가 높았다. 하얀 포말이 교각에 부딪히자 쩌렁쩌렁 소리가 울리고 발밑으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차디찬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히자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볕이 들지 않는 갯바위에는 물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허연 살얼음이 앉기도 했다. 130m 길이의 잔교에는 낚시꾼 두어 명이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입질을 기다리며 꼼짝 않고 서 있는 강태공들 뒤로 쉼 없이 파도가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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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곡 바다낚시공원 근처에 있는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촬영지.

나곡 바다낚시공원 근처에 있는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촬영지도 들러볼 만하다. 언덕에 위치해 해안선을 한눈에 굽어보기도 좋다. 점심을 먹으러 죽변항으로 향했다. 메뉴는 곰치국.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5~6년 전 눈보라 치던 삼척에서 먹었던 곰치국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겨울 동해만 오면 자동으로 곰치국이 떠오른다. 씹을 것도 없이 부드러운 살코기에 푹 익은 묵은지를 송송 썰어 넣어 맛을 낸 뜨끈한 곰치국 한 사발이면 살을 에는 바닷바람에도 언제든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매년 겨울마다 다짐했던 기자다.

한껏 기대를 하고 찾아간 죽변항의 '명물곰식당'. 식당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당분간 곰치국 안됩니다.' 대관절 무슨 일인지 사장님을 보자마자 따지듯 물었다. "곰치 값이 너무 올랐어. 한 마리에 20만원이야. 당분간 못 팔아요." 닭 대신 꿩, 아니 곰치 대신 장치다. 해풍에 사나흘을 말린 장치는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얼큰하고 시원한 탕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자 정수리부터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온기 가득 안고 해안도로를 따라 더 남쪽으로 이동했다. 울진의 해안선은 전부 112㎞, 7번 국도와 917번 지방도로 그리고 해안선과 바투 붙은 이름 모를 해안도로를 넘나들며 최대한 바다를 눈에 담으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울진읍~망양정해변~촛대바위를 차례로 지나고 찾아간 곳은 매화면 매화리 벽화마을이었다. 바다와 슬쩍 빗겨난 소담한 마을엔 미리 봄이 온 것인지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했다.

# 바다 보고 대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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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으로 꾸민 매화리 벽화마을.

매화리 벽화마을의 주제는 만화가 이현세다. 울진이 고향인 이현세 씨는 마을에서 자신과 자신의 대표작품을 주제로 벽화를 꾸민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허락했다. 직접 문하생들을 데리고 마을을 찾아 어느 벽에다 어떤 작품을 그릴지 정해줬다. 매화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매화4길을 따라 이현세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의 주인공과 주요 장면이 벽화로 되살아났다.

마을에 벽화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앞으로 이현세 박물관도 만들고 매화마을이라는 이름에 맞게 나무와 꽃도 조성할 계획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내내 따스한 볕이 한껏 내리쬈다. 집집마다 심어 놓은 매화나무에 벌써 망울이 올라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한참을 쳐다봤다. "2월 말 매화가 피면 마을이 더 아름다워요. 대게 축제 때 오면 딱이겠네. 울진은 2월 말 3월에도 눈이 많이 오거든. 운이 좋으면 설중매도 볼 수 있지요." 황춘섭 마을이장이 자랑하듯 말했다.

장장 100㎞를 차로 달리며 해안선 구석구석을 훑었더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됐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 울진 대게를 맛볼 생각에 마음이 한창 들떠 후포항으로 향했다. 자, 이제 저 산모퉁이만 돌면 울진의 대표 대게 산지 후포항인데…, 웬걸 차가 갑자기 멈췄다. 황석준 울진군 홍보팀장은 마지막으로 꼭 봐야 할 것이 있다며 일행을 재촉했다. 떠밀려 올라간 등기산 중턱엔 해안가 갓바위 상공으로 이어지는 스카이워크가 있었다. 총길이 135m로 조성된 스카이워크는 해상 50m 높이에 만들어졌다. 3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에 맞춰 스카이워크도 개장할 예정이다. 축제장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다. 망망대해를 향해 뻗쳐 있는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사람들과 고깃배가 바글바글한 후포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바다에 오롯이 안기는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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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대게와 마주할 시간. 장소는 후포항 여객선터미널 근처에 있는 왕돌수산이다. 가마솥에 대게를 쪄내는 왕돌수산은 대게뿐 아니라 방어와 문어 같은 겨울철 동해안 별미를 두루 요리한다. 먼저 나온 방어회와 문어로 입맛을 돋우는 동안 사장님의 울진 대게 자랑이 이어졌다. 울진 사람들은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를 근거로 들면서 고려 때부터 대게를 먹은 원조마을이 바로 울진이라고 주장한다. 후포항에서 거래되는 울진 대게는 대부분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일대에서 잡힌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왕돌초는 해양생물의 보고로 꼽히는 황금어장 중의 황금어장이다.

사장님의 일장 연설이 끝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가 한상 가득 차려졌다. 빠른 손놀림으로 게살을 전부 발라 먹자 고슬고슬 비빔밥이 게딱지에 담겨 나왔다. 그렇게 방어에서 문어로 문어에서 대게로 2시간 가까이 입안에서 맛의 잔치가 벌어졌다. 단연코 올해 겨울 가장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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