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여행플러스 이벤트
[여행 +] 맥주의 나라 가서 와인 마시고 왔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어른 키만큼 훌쩍 자란 포도나무들이 수백 열 종대로 모인 광경. '독일 와인은 전 세계가 간직해야 한다'는 국가 2절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단언컨대 난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맛을 모른다. 떫고 시고, 어떤 와인에서는 약 맛을 느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는다. 부득이한 자리에서는 마신다. 심지어 병나발을 분 적도 있다. 병을 줄 세우며 마시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와인 애호가에게 한 소리 들을 애티튜드다. 이런 내게 와인을 주제로 한 취재라니. 정중히 사양했다. 연신 손사래를 쳤다.

며칠 후.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덩그러니 섰다. 그렇다. 와알못(와인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결국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내리자마자 떠오른 건 안타깝지만 와인이 아니었다. '맥주의 나라' 독일 본토에서 맛보는 목 넘김 좋은 맥주 한잔이었다. 머리는 와인이었지만 몸은 맥주가 간절했다. 결국 밤늦게 도착한 숙소에서 맥주 한 잔 벌컥.

다음 날 아침.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과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와이너리 투어에 나섰다. 이동 중 독일관광청의 미디어 담당 매니저 크리스티나 한센이 물었다. "독일 사람들이 맥주와 와인 중 어떤 걸 더 많이 마실까요?" 당연한 걸 왜 물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심드렁하게 답했다. "물론 맥주겠죠." 하지만 돌아온 답은 "반반입니다." 놀라웠다. 프라이드, 양념치킨 반반도 아니고 맥주와 와인이 반반이라니. 지금껏 우리가 알던 독일은 '맥주의 나라' 아니었던가. 크리스티나는 "독일 국가 2절에 '독일의 와인은 전 세계가 간직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독일인은 와인을 사랑한다"면서 "생산량만 해도 세계 10위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수입하는 나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 한번 무릎 강타. 우리로 치면 애국가 2절에 전통주인 막걸리나 동동주에 대한 찬양을 한 것 아닌가. 그것도 맥주가 아닌 와인을 말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황금빛이 매력적인 리슬링 와인.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두 번의 놀라움은 단 한순간에 뒤로 밀렸다.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urttemberg)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인근의 한 와이너리를 찾으면서부터다. 어른 키만큼 훌쩍 자란 포도나무들이 10열, 아니 수백 열 종대로 헤쳐 모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내 눈과 입이 자동 만개. 보는 것만으로 싱그러웠고 아름다웠다. 눈에만 담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듯했다. 카메라 셔터를 바삐 눌러댔다. 때마침 크리스티나가 밭고랑 사이를 두 팔을 벌린 채 지나갔다. 푸른 파스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 검붉은 포도, 그리고 연보라 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꽤 그럴싸했다. 이곳을 진정한 포도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궁금해졌다. 와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과연 무슨 맛일까. 어떤 향기가 날까. 누구보다도 먼저 테이스팅 테이블에 앉았다. 여느 사이다나 탄산수보다도 기포가 거센 스파클링 와인이 첫 잔에 담겼다. 한 모금을 마시자 입안에 구슬만 한 비눗방울 수백 개를 머금은 듯했다. 알알이 터져나가며 와인 향을 더욱 돋우었다.

두 번째 잔은 황금빛의 리슬링 와인으로 채웠다. 이때 크리스티나가 또 나섰다. "독일은 리슬링 와인의 본고장입니다. 전 세계 리슬링 와인의 60% 이상이 독일산이죠." 한 모금 후르륵. 마시자마자 깨달았다. 약 맛이라고 했던 그 와인이 바로 리슬링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180도 달랐다. 달콤하면서 신맛이 아주 오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휘발성 강한 향은 코를 간질이듯 지나갔다. 와알못이 느끼기에도 명품이라 하기에 손색없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푸른 하늘, 검붉은 포도, 연보라 치마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세 번째는 묵직한 피노누아, 네 번째는 달콤한 스위트 와인으로 마무리했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선호 와인이 다르겠지만 유독 리슬링 와인이 머리와 혀끝에 남았다. 그동안 했던 오해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리슬링 와인을, 그것도 독일산으로 찾아서 마실 것 같은 예감과 다짐을 동시에 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지 3주가 흘렀다. 가족들이 와알못이 출세했다며 웃어 보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곁에 황금빛 리슬링 와인이 담겨 있는 걸 보면서 말이다.

※취재협조=독일관광청

[바덴뷔르템베르크(독일) = 장주영 여행+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